비전공자의 개발 입문 이유
"남들은 러닝화 신고 레이스를 달리는데 나는 그 트랙에 맨발로 서있는 기분이야."
재작년 커리어 전환을 준비할 때 친구에게 털어놓았던 고민이다. 준비하던 유학이 코로나로 인해 무산되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힘들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무엇을 하면서 살건지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중 가장 큰 도움이 됐던 '내게 맞는 일을 하고 싶어'라는 책을 읽으며 아래와 같이 직업 선택을 위한 체크 리스트를 정리했다.
✅ 단순 작업이 반복되는 직무는 나와 맞지 않는다.
✅ 어려워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업무가 더 좋다.
✅ 일반 사무직으로는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 내가 하는 일이 직접적으로 나의 스펙 또는 성과가 되길 원한다.
✅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전반적으로 폐쇄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한다.
위를 충족하는 많은 직업이 있었지만, 평소 관심은 있으나 도전하지 못했던 개발 직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변화할 때 빠르게 캐치하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4의 물결이라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지금, 타이밍과 기회가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발이 안맞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일단 도전하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고 정 안 맞으면 어머니와 카페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긴 했었다.)
직무 전환과 항해99
개발 직군을 찾아보며 프론트엔드, 백엔드가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px의 차이까지 눈여겨 보는 나는 당연히 화면이 직접적으로 보이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개발을 도전하던 때는 지금과 달리 프론트엔드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이 거의 없었고, '자바를 배우면 자바스크립트는 쉽다.'는 당시 학원 상담사님의 감언이설에 홀려 국비 학원에서 자바 과정을 수료했다.
역시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더 큰 재미를 느낀 부분은 화면 UI를 그리고 자바스크립트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부분이었다. 국비를 수료할 즈음 취업을 할지 더 공부할지 고민을 하다 알게 된 곳이 항해99였다. 당시 2기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지역 구분 없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나 프론트엔드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고민하던 중 모의 면접을 진행해 줬던 협력사에서 추가 인터뷰 제의가 왔고, 회사에서 더 배울게 많다는 조언에 따라 항해를 뒤로하고 실무에 뛰어들었다.
자바 개발자로 취업했지만 금융쪽이라 신입인 내가 만질 수 있는 코드는 아니었고, 당시 프로젝트도 설계과정이 길었던 터라 반년 가까이 코드를 짜지 못해 내가 개발자인지 아닌지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뭐라도 하고 싶어 방통대 컴퓨터과학과에 지원해 출근하고, 야근하고, 퇴근하면 30초 거리에 있는 카페로 곧장 가 학교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노력해도 프로젝트 진척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고 내 실력에 자신이 없다면, 자신이 있을만한 근거를 찾아주자.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는 생각이 들어 더 성취감이 드는 업무인 프론트엔드로 커리어 전환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많은 부트캠프가 있었지만 이전에 고민했던 터라 상대적으로 친숙한 항해99에 더 정감이 갔다. 항해에서 올린 모든 글과 수료생들의 모든 후기를 읽어보았고, 진짜 힘들다, 교육과정이 친절하지 않다는 단점들도 숙지했었다. 하지만 9 to 9의 스파르타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나 그냥 항해라는 네이밍이 마음에 들고, 과정이 짧다는 개인적으로 느끼는 장점이 더 커서 항해에 지원하게 되었다. 항해에 얼마나 진심이었냐면, 14기 과정이 4월에 시작했는데 항해 결제는 전년도 7월에 끝내뒀을 정도였다.
항해99를 마무리하며
99일이라는 기간만큼 항해에서의 일정은 정말 '휘몰아친다'. 자바스크립트 1주, 알고리즘 1주 후에 바로 리액트, 후에 협업 프로젝트... 화면 구현과 기능 개발까지 맡아야 하는 프론트엔드는 백엔드 인원보다 적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더 바쁘다. 정말 항해 후기에서 흔하게 보는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정말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매일 잠은 죽어서 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같이 파이팅 하는 동기들과 개발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 성취감 때문이었다.
항해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정말 개발이 초면인 사람에게 친절한 커리큘럼은 아니다. 개발이 처음인데 항해에서 정말 괜찮게 성장하려면 백엔드가 뭔지, 프론트엔드가 뭔지 구분한 다음 내가 배우고 싶은 언어를 미리 정해서 해당 언어를 '최소' 1달은 미리 공부하고 와야 한다. 리액트를 주특기로 선택할 예정이고 정말 개발이 처음이라면 HTML/CSS를 이용해서 화면을 원하는 대로 어느 정도 그릴 줄 알아야 항해에서의 과정이 편하고, 자바스크립트도 클론코딩정도는 '최소' 한 번 진행하고 와야 이해가 수월하다.
항해를 시작하며 개인적으로 다짐했던 것들이 있다. 무조건 아침 9시에 일어나기, 게임하지 않기, 여행가지 않기, 어떻게든 자리에 앉아있기. 다섯 시에 자든 일곱 시에 자든 거의 아홉 시에 일어났고, 마음 흔들리지 않으려고 게임은커녕 밥도 책상에서 먹었다. 식탁에서 가족들이랑 먹으면 수다 떨다가 다시 책상으로 되돌아오기 싫을까 봐. 코드가 잘 안 짜지고 하기 싫어도 의자에 앉아 코드를 가만히 쳐다보기라도 했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뒤돌아보니 자바스크립트를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던 1월 말보다 정말 성장했음을 느낀다. 자바스크립트에 대한 이해도도, 말만 들어봤던 리액트를 내가 사용해서 구현해 낸다는 것도 모두.
개발을 시작할 때도, 얼떨결에 개발자로 회사에 다닐 때도 항상 불안했다. 상사들이 잘한다는 말을 했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내 실력을? 그냥 예의상 해주는 말이겠지. 하고 넘겼다. 거품이 꺼질까 봐 불안했고 역삼각형 같은 지식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나에게 개발자라는 '근거'를 채워주기 위해 온 항해였고, 지금은 전과 같이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 치열하게 공부하며 프론트엔드쪽 개발을 할 때 정말 큰 성취를 느낀다는 것을 알았고 설령 모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몰라서 불안한 게 아니라 내가 채워야 할 지식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실력도, 마음도 전보다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이제는 앞으로 성장할 내 모습이 기대된다. 달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던 내가 러닝 트랙 위에 덩그러니 서있는 것 같은 기분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 시리도록 파란 바다 위의 항해사가 되어 키를 잡고 바다를 나아가는 기분이 든다.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내가 원하는 나만의 속도로, 내가 원하는 항로로 항해하는 것. 이게 항해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자 내가 추구하는 것임을 알게 된 99일이었다.
+ [23/07/07] 14기 수료 기념으로 진행된 앙케이트에서 팀워크 기여상을 받았다 야호! 항해를 잘 갈무리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동기 여러분 감사합니다🥹
+ [23/07/08] (나의 애착인형) 유리님이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하셨던 항해 캡슐도 오늘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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